올림픽 무역 조정관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5월 24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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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OC 집행위원회 회의장면.

1981년 8월 1일 문교부는 그때까지 외무부의 재외공관과 체육인을 통해 벌인 올림픽 유치 활동의 성과를 중간 점검했다. 그때까지 한국 측이 접촉한 60여명의 IOC 위원 중 5명이 한국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지원표명 16명, 호의적 고려 16명, 중립 18명으로 분석되었다.

한국 측이 접촉한 IOC 위원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서울이 시설과 도시 여건에 비추어 나고야보다 우수하나 공산권과 국교가 없는데다 전쟁의 위험이 있다는 올림픽 무역 조정관 것이 약점이라는 의견들이었다. 특히 나고야가 1979년 9월부터 1981년 5월까지 1년 9개월 동안 세계 각국의 IOC 위원들을 방문하거나 일본으로 초청하여 환대하면서 꾸준히 득표활동을 벌인데 비하여 서울 쪽은 유치신청 후 유치교섭과 홍보활동이 미미하여 한국의 개최의사를 의심하는 인사도 적지 않았다.

지역적으로 보면 미주지역과 대양주의 IOC 위원들은 대체로 서울 쪽에 호의적이었으나 공산권과 유럽 및 중동지역 IOC 위원들은 나고야 쪽으로 기운 듯 했다. 아프리카와 남미지역 IOC 위원들은 태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한국이 미온적인 유치활동을 편 것을 감안하면 IOC 위원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21명의 위원들이 서울 지지태도를 밝힌 이상 일본 나고야 시와 표 대결을 벌여도 망신당하지 않을 것에 대한 포섭공작을 활발히 펼치고, 9월의 바덴바덴 IOC 총회 때 서울의 월등한 개최여건을 알릴 경우 나고야 시와 백중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하게 되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이규호 문교부 장관을 그동안의 올림픽 유치활동 성과를 중간 점검한 결과를 1981년 8월 10일 열린 제4차 올림픽 유치대책 각료회의에 보고하고 유치교섭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남덕우 총리가 주재한 이날의 회의는 문교부 측의 고무적인 보고 덕택에 모처럼 밝은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막대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올림픽 유치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 온 경제 각료들의 태도도 한결 부드러워져서 이날 회의는 긴 시간의 토론을 거치지 않고도 특별대책반 구성과 홍보 전시관의 설치 및 홍보영화, 책자, 기념품 제작 등 바덴바덴 IOC 총회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의 유치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올림픽 유치활동을 펴나간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올림픽 유치활동의 한계선을 분명히 그었다. 그렇더라도 올림픽 유치활동을 정상적으로 펴나가기로 정부방침이 확정된 것은 큰 변화였다.

1981년 8월 10일의 제4차 올림픽 유치대책 각료회의의 결정에 따라 김동휘 외무부 차관을 책임자로 한 유치특별대책반이 구성되어 그 첫 회의가 8월 22일 외무부 회의실에서 열렸다. 국무총리실 행정조정관, 외무부 정보문화국장, 문교부 체육국장 및 문공부, 서울시 KOC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는 외무부가 작성한 제24회 올림픽 및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유치를 위한 종합대책을 집중 토의한 끝에 유치특별대책반을 도울 실무대책을 관계부처 과장급으로 구성, 운영키로 합의했다.

또한 이날 회의가 관계부처별로 업무를 분담하여 효율적으로 추진키로 결정함에 따라 외무부는 유치계획의 작성과 활동을 총괄하고, 문교부는 실무대책반 운영을 위한 인력을 지원하며, 문공부는 대외 홍보를 위한 책자의 제작 및 배포를 담당키로 했다.

1981년 8월 10일에 열린 정부의 제4차 올림픽 유치대책 각료 회의를 계기로 서울올림픽 유치활동은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었다. 3월부터 5개월에 걸쳐 계속된 내각 안의 올림픽 유치찬반 공방전이 찬성파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4회 올림픽 대회를 반드시 서울로 유치하겠다는 신념의 결여로 유치활동은 체육계의 여망대로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펼쳐지질 못하고 형식적인 선을 탈피하지 못했다.

바덴바덴 IOC 총회를 불과 한 달 앞둔 8월 하순, 이규호 문교부 장관은 일본 나고야 시로 기운 대세의 반전을 위해서는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결연한 올림픽 유치 결심을 받아낼 필요성을 절감했다. 바로 그즈음 노태우 제2정무장관은 나름대로 문교부, 외무부, KOC로부터 그동안의 유치활동 및 IOC 위원들의 동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 “앞으로 한 달 동안 거국적인 유치활동을 펼치면 일본 나고야시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밝은 유치전망을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1981년 9월 1일, 이 문교부 장관도 청와대를 방문하여 올림픽 유치전망이 호전되어 적극적인 유치활동을 벌이면 일본 나고야 시와 백중세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밝힌 보고서를 제출했다. 내각 안에서 올림픽 유치 문제를 둘러싼 찬반공방전이 지루하게 벌어지고 있던 지난 몇 달 동안 확고한 의사표시를 유보하고 있던 전 대통령은 이날 제24회 올림픽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서울로 유치해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이 문교부 장관의 보고가 있은 직후 전 대통령은 올림픽 유치 활동을 거국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유치활동의 총 사령탑으로 노태우 제2정무장관을 지명했다.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노장관은 1981년 9월 4일 올림픽 유치활동을 위한 비상대책 회의를 소집했다. 이 문교부 장관, 노신영 외무부 장관, 박영수 서울시장과 전상진 KOC 부위원장 등이 참석한 이날 회의는 IOC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동원하여 유치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 IOC 집행위원회 회의장면.

노태우 장관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올림픽 유치 활동은 아연 활기를 띠게 되었다. 노 장관의 지휘를 받게 된 올림픽 유치 특별대책반은 즉시 바덴바덴 IOC 총회 기간 동안에 현지에서 활동할 유치대표단의 구성작업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바덴바덴 IOC 총회 3주일을 앞두고 구성된 유치대표단은 체육관계 인사를 중심으로 재계의 유력인사, 정부관계 인사, 언론인 등 107명의 대규모 인원으로 짜여졌다. 당시 반 연금 상태에 있던 대한체육회 박종규 전 회장은 노 장관의 특별배려로 맨 마지막에야 유치대표단에 끼어 바덴바덴 현지에서 큰 성과를 올리는 주역의 한 사람이 되었다. 유치대표단의 분포는 다음과 같다.

▲ 공식대표단 : 박영서 서울특별시장(단장) 외 5명

▲ 올림픽 무역 조정관 올림픽 총회대표 : 김택수 IOC 위원 외 3명

▲ 재계 지원단 :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외 6명

▲ KOC 지원단 : 김세원 KOC 전 부위원장 외 8명

▲ 실무지원단 : 이연택 국무총리실 제1행정 조정관 외 20명

▲ 일반지원단 : 박종규 대한체육회 전 회장 외 15명

바덴바덴 IOC 총회 대책의 수립

유치대표단이 서독 바덴바덴으로 출발하기 직전 실무대책반이 최종적으로 점검한 IOC 위원들의 성향을 보면 예상 투표자 82명 중 한국지지 26명, 호의적 고려 6명, 중립 34명, 반대 16명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때까지 확실한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출신 IOC 위원들을 어떻게 포섭하느냐에 승패가 갈릴 전망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다분히 한국 쪽의 희망적인 관측이 작용한 것으로 실상은 훨씬 비관적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진다. 어쨌든 지휘부는 중림적인 IOC 위원들을 집중 공략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지역별로 IOC 위원들과 관련 있는 체육계, 정계, 경제계 인사가 각 IOC 위원별로 전담하여 교섭을 벌이는 한편, 홍보전시관의 활용 및 유치제안 연설 등을 통해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교섭 대상자는 직접 투표권을 행사는 IOC 위원 전원과 국제경기연맹 회장단 및 IOC 위원들과 교분이 두텁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각국 NOC 위원장단, 그밖에 국제스포츠 사회에서 막후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을 포함시켰다.

1981년 9월 18일 서울을 떠난 유치대표단이 20일 서독 바덴바덴 시에 도착함으로써 드디어 ‘바덴바덴 10일 작전’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유치대표단은 작전0의 출발선부터 암초에 부딪치고 말았다.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들은 구성원들의 대표 자격을 문제 삼은 논란으로 팀워크가 삐걱거린데다 현지의 압도적인 나고야 우세분위기는 대표단의 활동을 여지없이 위축시켰다.

특히 바덴바덴 시 현지의 언론들은 서울 유치대표단에게 지극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서울이 과연 IOC 위원 및 몇 명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가 관심거리라고 논평했으며, IOC 수뇌진도 제24회 올림픽의 나고야 시 개최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 같은 현지 분위기는 올림픽 전시관이 개관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9월 22일 오전 바덴바덴 시의 옛 철도역 자리에서 펼쳐진 제24회 올림픽 유치 신청도시들의 전시관 개관식이 예상 밖의 파문을 몰고 왔다. 1988년 여름철 올림픽 개최를 신청한 캘거리(캐나다), 팔룬(스웨덴), 코르티나 탐폐소(이태리) 등 5개 도시가 준비한 전시관이 일제히 문을 열었는데, 서울관의 짜임새 있는 전시내용이 인기를 끌었다.

99㎡정도의 좁은 공간에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의 모형도를 중심으로 한국의 문화나 눈부신 발전상을 패널과 슬라이드가 조화를 이루며 소개하고 있었고, 영상 비디오는 뉴욕이나 도쿄에 손색없는 현대도시인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서울관의 인기를 더욱 높인 것은 영어, 불어, 스페인어에 능한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5명과 미스코리아 출신 안내양 3명이었다. 이들은 우아한 한복 차림으로 서울관을 찾는 인사들에게 정성을 다한 서비스로 안내해 주었다. 반면에 일본의 나고야 관은 사진 위주의 평면적인 전시인데다 일본항공 스튜어디스들이 근무복 차림으로 방문객들을 안내하여 서울관과 여러 모로 비교되었다.

유치대표단은 무려 107명이나 되는 대규모였으나 바덴바덴 시에 모인 IOC 위원들과 국제 스포츠 관계자들에 대한 설득작업에 중심적인 구실을 한 것은 역시 체육계 대표들이었다. 조상호 KOC 위원장을 비롯한 전상진 부위원장 및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박종규 전 KOC 위원장 등은 능란한 외국어 실력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활용하면서 그동안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쌓아올린 교분을 밑천삼아 정력적인 유치활동을 펼친 끝에 예상 밖의 큰 성과를 올렸다.

일본의 나고야 시측이 전혀 눈치를 체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진 이른바 바덴바덴 드라마는 1981년 9월 3일 김운용, 전상진 2인이 선발대로 서울을 떠나면서 그 서막을 열었다. 김 총재는 호신용 스포츠로 범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태권도의 대부라는 점을 활용하여 북중미 및 유럽의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를 순방하면서 해외 태권도 사범들의 헌신적인 협조를 받으며 그 지역 IOC 위원들에게 서울올림픽 지지를 호소했다.

70년대 초반에 주 카메룬 대사를 지낸 적이 있는 전상진 부위원장은 케냐, 이집트, 튀니지를 돌고 유럽의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바덴바덴을 들어가면서 그 지역 IOC 위원들은 물론 체육계 및 정부 고위인사와 연쇄접촉하고 서울지지를 요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이 올림픽 개최 신청만 해놓고 유치활동이 거의 없어 사실상 유치의사가 불확실한 것으로 믿고 있던 많은 IOC 위원들은 이를 계기로 새삼 서울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 바덴바덴 IOC 총회에 파견되었던 우리 대표단의 귀국. 왼쪽부터 이원경 KOC상임위원, 조상호 KOC위원장, 박영수 서울시장, 정주영 추진위원장, 이원홍 KBC사장.

조상호 KOC 위원장은 바덴바덴 시에 도착한 다음날 저녁 브렌너스파크 호텔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예방하여 국제정치적 상황 때문에 제24회 올림픽의 서울 개최가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IOC 수뇌진의 견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9월 25일에는 중동 스포츠계의 실질적인 리더인 쉐이크 파하드 쿠웨이트 NOC 위원장과 요담을 가져 아랍출신 IOC 위원들 사이에 서울지지 세력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상진, 김운용 두 사람은 9월 23일 저녁 쿠르하우스에서 열린 서독 대통령 주최 리셉션, 9월 27일 스트라스부르의 관광여행, 9월 28일 바덴바덴 시장 주최 리셉션 등 각종 공식 비공식 행사장을 최대한 활용하여 IOC위원들과 각국 NOC 위원장단 및 국제경기연맹 회장단 등과 접촉하면서 서울지지 세력을 넓히는데 힘썼다.

이 같은 일련의 유치활동 성과는 9월 28일 쿠르하우스에서 전상진 KOC 부위원장이 주최한 스페인어권 대표들을 위한 리셉션에 남미출신 IOC 위원 전원과 포르투갈 IOC 위원 등 50여 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으로 나타났다.

당시 KOC 부위원장 직을 그만두고 하와이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정부의 훈령을 받고 바덴바덴 무대에 백의종군했던 김세원 전 KOC 부위원장은 주 노르웨이 대사를 역임한 인연으로 노르웨이 출신 스타우보 IOC 위원과 자주 어울렸다. 그는 특히 친한파인 스타우보 IOC 위원으로부터 북한 측이 서울올림픽을 반대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어내어 유치대표단의 정책수립에 큰 도움을 주었다.

서울올림픽 유치대표단의 단장은 박영수 서울시장 이었으나 바덴바덴 현지에서 유치단을 이끈 실질적인 주역은 정주영 현대그룹 총수였다. 정부의 올림픽 유치방침이 재확인된 1981년 6월 민간차원의 올림픽 유치활동을 주도하기 우해 구성된 올림픽 유치 준비 위원장에 취임했던 정주영 회장은 전국경제인 연합회 회장으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행정관료, 외교관, 경제인, 체육인 등 이질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유치단의 팀워크를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했다. 또한 고급 영어에 능한 유창순 무역협회 회장과 콤비를 이루어 유럽지역 IOC 위원들 사이에 영향력이 큰 영국의 엑세터 IOC 위원과 서독의 바이츠 IOC 위원을 포섭했다.

최원석 대한탁구협회 회장은 스웨덴의 칼 그렌 IOC 위원과 에릭슨 IOC 위원을 서울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였고, 프랑스의 두 IOC 위원에 대한 설득 공작을 맡은 조중훈 대한항공 올림픽 무역 조정관 사장은 엘 조그 IOC 위원이 긴 여행에서 돌아와 바덴바덴 도착이 늦어지자 다시 파리로 날아가 직접 모셔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은 수단의 할림 IOC위원을 상대로 설득공작을 펼쳤고, 배종열 한양주택사장은 듀니시 출신 IOC 위원을 설득했다.

이처럼 재벌 총수들이 미지의 스포츠 세계에 뛰어 들어 해외에 뿌리내린 자체 기업세력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많은 IOC 위원들을 포섭한 것은 ‘바덴바덴 드라마’의 전기를 마련한 일대 성공작이었다.

[EAI 스페셜리포트] 대만 특집 시리즈 ②_미중 경쟁 시대 대만의 안보 전략과 도전 요인

본 스페셜리포트에서 왕신셴 대만 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소장은 장기적인 미중전략 경쟁 속 양안관계에서 대만이 직면한 도전 요인을 설명합니다. 대만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편, 심화하는 중국의 “처벌과 보상”이라는 이중전략 하에서, 국내 정치 경쟁의 격화와 분열을 겪으며, 양안 국민들의 적대적 의식 문제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습니다. 저자는 특히 양안 관계가 더 이상 관계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위기관리를 할 것인가의 문제로 변하게 올림픽 무역 조정관 된 점에 주목합니다. 대만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위험 회피와 지연 전술임을 강조하며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 미중 경쟁 시대의 대만

미중 양국은 2018년 3월 이래 경제무역 분야에서 과학기술 분야로, 그리고 전면적 전략경쟁으로 그 갈등의 수위를 점차 높여왔다. 코로나 팬데믹 발발 이후에는 ‘백신외교’도 경쟁의 장이 되었다. 트럼프 정부 시기, 미중 경쟁은 미국 대선의 과열 양상 속에서 더욱 격화되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그러한 양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기성체제(the Establishment)의 노선으로 돌아가 동맹과의 결속과 다자주의적 관계를 통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상황이다. 올해 4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2021년 전략경쟁 법안(Strategic Competition Act of 2021)”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미국이 초당적으로 대중국 전략지침을 수립한 첫 번째 중대 법안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인 커트 캠벨(Kurt Campbell)은 지난 5월 26일 미중 간 “전략적 관여(strategic engagement)”의 시대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다고까지 말했다. 중국은 종합국력에서 미국에 뒤져 있고 군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여전히 충돌을 피하고 있지만, 외교적으로는 두려움 없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지난 2년간 기세등등했던 중국의 “전랑 외교”는 지난 3월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회담 때 양제츠와 왕이가 바통을 이어가며 그 절정을 보여주었다. 올해 봄 양회(兩會)에서 시진핑이 제기한 “세계를 당당하게 바라보자(平視世界)”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모두 국내의 민족주의 정서를 만족시키는 “내부 선전”의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지전략적 특성, 그리고 중국의 자칭 주권의 완전성과 통일을 위한 고려 때문에, 대만은 두 강대국의 경쟁과 대결의 최전선에 서 있게 되었다. 올해 4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커버스토리는 대만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칭했다. 미국과 중국이 여러 해 동안 유지해 온 ‘하나의 중국’이라는 “전략적 모호성”이 점차 와해하면서 대만 해협의 평화가 흔들리게 되었다. 또한,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겠다”라는 목표를 위해 최후의 상황에서는 군사적 침공을 단행해서라도 통일을 이루려고 하고 있다. 더욱 경계심을 갖게 하는 것은 올해 3월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필립 데이비슨(Philip Davidson)이 미 의회 청문회에서 향후 5-10년 동안 중국이 침략 및 군사적 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이 가장 큰 목표 대상이 대만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NBC도 미 국방부가 대만해협에서 중국의 무력 사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결과 미국이 여러 차례 열세를 면하지 못했고, 대만이 미중의 경쟁 속에서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2. 대만의 올림픽 무역 조정관 안보 전략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만의 안보 전략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강력한 외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 의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슴도치 전술(Hedgehog defense)을 구사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세계적으로 대체 불가능성을 갖는 “산업”을 구축하는 것이다.

1) 미국에의 편승(bandwagoning)

일반적으로 경쟁하는 두 강대국 사이에 처해 있는 국가는 대략 세 개의 선택지가 있다. 대항(balancing), 편승(bandwagoning), 위험회피(hedging)이다. 대다수의 국가는 헤징이라는 유연한 전략을 채택하면서 최대한 양측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미중 간의 전면적인 경쟁 속에서 다수의 아태지역 국가들이 안보 전략에 있어서는 미국에 경도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하며 헤징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이다. 두 강대국의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위험회피의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다수의 국가가 여전히 전략적으로는 미국 편으로 기울어져 있으면서 중국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이러한 스탠스를 취하고 올림픽 무역 조정관 있는 가장 대표적인 국가일 것이다. 리셴룽 총리는 작년 6월 지에 라는 장문의 글을 발표했다. 리셴룽은 글에서 미중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될 대치의 길에 들어서 있고, 만약 양국이 아시아 각국에 양자택일을 강요한다면 싱가포르 및 동남아 국가들은 어느 쪽에도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위험 회피의 헤징 전략을 말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에 있었던 “2+2 회의”와 한일 양국 정상이 각각 바이든 대통령과 가진 올림픽 무역 조정관 회담에서 안보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만, 중국의 기분을 완전히 상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한 논리에 따르면, 대만은 안보를 위해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중국 시장 없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지난해 대만의 대중국 수출은 전체 수출의 43.8%를 기록했고 이는 사상 최고치였다. 따라서 위험회피의 헤징 전략이 대만의 국가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지일 것이다. 그러나 대만은 미중 간의 경쟁 속에서 미국에 완전히 “편승”하며 중국에 “대항”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중국의 주권이 대만에 손을 뻗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공산당은 종종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선언한다. 또한 중국의 종합국력이 증대되면서 대만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고, 빈번하게 군사적 위협과 외교적 탄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만으로 하여금 강대국, 특히 미국의 지원에 의지하게 만들고 있고, 이를 생존의 길로 여기게 만들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대만 내부요인이다. 양안 관계를 보다 온화한 방식으로 처리하려는 야당(국민당)과 달리, 현재 집권당인 민진당은 줄곧 “중국에 대한 저항”을 주요 정책으로 삼아왔다. 시진핑이 2019년 1월 2일 발표 4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대만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하고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 베이징 당국이 강경하게 대응한 이후, 중국 당국에 대한 대만의 반발 여론이 심화하였다. 이로 인해 민진당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반중 정책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올림픽 무역 조정관 미중 간의 전면적 경쟁 속에서 대만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 편에 서 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 등 중국 봉쇄의 전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 동맹” 등을 강조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방력과 군사력의 강화는 이른바 고슴도치 전략(Porcupine strategy)인데, 전략적 의미는 비대칭 전쟁(Asymmetric warfare)의 논리와 유사한 것이다. 고슴도치가 자신의 가시를 사용하여 적을 위협하고 저지하는 것과 같다. 트럼프 정부는 작년 대만에 어뢰, 순항 미사일, 무인기 등 7개의 주요 무기체계를 팔아 대만으로 하여금 고슴도치처럼 공격하기 어렵고 심지어 반격능력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3월 미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바 있는 데이비드 오크마넥(David Ochmanek)은 만약 양안 간에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이 대만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론에 말한 바 있다. 그는 대만이 방어무기를 늘려 미국의 지원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대만이 군사 능력을 강화해야만 자기방어에 대한 믿음을 높일 수 있고 동맹의 실질적 협력 방어 의지를 높일 수 있다. 동시에 대만 외교의 협상력과 국제무대에 참여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만은 각종 무기체계의 해외조달을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국산 전투기와 잠수함 등 신형 무기도 지속해서 개발해 왔다. 최근 몇 년 동안 HF-2E 순항 미사일, 공군의 Wan Chien 공대지 순항 미사일, 해군의 HF-3 초음속 대함 미사일 등 국산 공격 무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이러한 국산 무기 개발로 인해 대만은 원래의 방침이었던 “견고한 방어와 중층 억지”라는 전략에 더해 2021년부터 “다차원 방어, 중층 저지 및 섬멸, 방어력 지속, 중점 돌파”라는 방위 구상을 추가할 수 있었다. 또한, 대만 국방안전연구원(國防安全研究院)의 에 의하면,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의 결과로 오히려 장기적 국방 제도, 무기 구매, 실질적 동맹 관계에 있어서 대만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되고 있다. 예컨대, 올해 4월 미일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는 대만해협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대만해협에서 어떠한 무력 시도나 위협에 의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현상(status quo)이 바뀌거나 지역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에 미일 양국이 반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동시에 대만이 내부적으로 국방의 중요성에 대해 재고하고 병역과 국방 제도를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3) “호국의 기틀”로서 세계적으로 대체불가능한 “산업”의 구축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중 간 기술 경쟁은 양국 경쟁의 최전선이었다. 바이든 정부도 동맹국들과 첨단기술 동맹을 결성해 중국의 급속한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과 AI, 5G, AIoT, 전기차, 고속컴퓨팅, 가상화폐 채굴 등 여러 방면에서 반도체 칩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고, 선진국의 중요 관심 대상이 되었다. 특히 대만의 TSMC는 하이엔드 칩 제조 능력으로 반도체 산업에서 선두 자리를 굳혔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대만의 영향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많은 국제 언론들이 대만이 없으면 각국의 중요 산업들이 중단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반도체 칩 부족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그래서 TSMC의 생산 라인이 중단되면 글로벌 산업도 중단될 수밖에 없으며, 그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 국가들이 대만에 반도체 칩 공급 안전성을 확인하는 이유이다. 물론, 싱크탱크의 많은 학자가 현재 중국의 첨단산업이 미국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에 대만 반도체 산업을 통제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짙어질 것으로 분석한다. 만약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만을 탈환하기로 결정한다면 첫 번째 조치로 대만 반도체를 통제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물론 대만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세계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위치로 올라서게 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세계 산업 발전과 연계시켜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받고 있는 위협이 세계의 문제가 되도록 부각해 대만의 안보를 올림픽 무역 조정관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사실 지난 1년여 동안 대만 정부가 국산 코로나19 백신 제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한 것도 비슷한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3. 양안관계에서 대만이 직면한 도전 요인

1)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초래할 이중적 리스크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만은 현재 양안 관계에서 대내외적으로 “양면 게임(two-level games)” 상황에 놓여 있으며 “미국에 편승하고 중국에 맞서는 것”을 우선적인 선택지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두 가지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우선 중국이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대만 집권당의 본질에 대해 중국외교부와 국무원 대만판공실뿐만 아니라,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들은 민진당 정부가 미국에 의존해서 독립을 도모하고 서양의 것을 숭배한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팬데믹 상황에서도 팬데믹을 이용해 독립을 도모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최근 대만에서 지역 감염이 발생한 후 중국의 지원은 거부하고 일본과 미국이 제공하는 백신은 수용하는 등의 모습이 베이징 당국의 불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미국, 중국, 대만 간의 삼각관계는 일종의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다. 중국은 강력한 압박을 통해 대만이 미국에 경도되지 않도록 저지하고 있고, 대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미국과 일본에 더욱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한다. 요컨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행위”로 위험 회피의 조치가 결여된 행동이 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 , 등을 통과시켰고, 대만에 대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무기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대만을 연합군사훈련에 초청하고 아태지역 상륙군 지휘관 심포지엄인 팔스(PALS, Pacific Amphibious Leaders Symposium)에 참여시켰다. 그러나 미국이 대만에 대해 확고한 약속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대만 정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이다. 만약 미중 간에 일정한 합의에 도달하여 양측이 “전략적 후퇴”의 스탠스를 취하게 된다면 대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처럼 미국에 지나치게 편승하고 중국에 대립하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또 다른 리스크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2) 강도가 점점 올림픽 무역 조정관 세지고 있는 중국의 “처벌과 보상” 이중전략

중국은 대만에 대해 줄곧 “처벌과 보상”의 이중전략을 취해 왔다. 민진당 집권기에 들어서 처벌이 더욱 강해지고 보상은 더 많아지는 중국의 일방적인 행위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전략은 대만에 더욱 큰 압박이 되고 있다.

① 처벌의 측면에서는 주로 대만 정부를 겨냥하고 있는데, 국제무대 진출의 봉쇄 및 군사행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몇 년간 끊임없이 대만의 수교국들로 하여금 대만과 단교를 하게 만들고 대만이 국제기구와 국제회의에 참여하는 것을 저지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중국의 군용기와 군함이 대만 주위를 맴돌고 있으며, 군용기가 빈번하게 대만 서남지역의 방공식별구역(ADIZ) 및 대만 해협의 중간선을 넘고 있다. 이는 대만 외에 미국과 일본도 겨냥하고 있는 것이며, 대만 해협의 중간선을 넘는 것은 대만의 공중 방어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② 보상의 측면은 주로 대만 인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시진핑이 제기한 “경제사회적 융합”을 지도 이념으로 하고 있다. 즉, 각종 우대 정책을 통해 대만 기업과 인재들이 중국에 투자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유인하고, 양안 경제의 긴밀한 교류를 이용하여 대만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적해서 강화하려는 것이다. 보상 전략은 대만 정부를 완전히 우회하여 무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 행위”이다. 게다가 다양한 유형의 통일전선전술, 선전전, 인지전(cognitive warfare) 등 “혼합전”을 통해 대만의 국내 정치와 사회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

3) 국내 정치 경쟁의 격화와 분열

양안 관계는 대만 내 정당 간, 그리고 대중들의 관점이 가장 갈리는 정책 의제이다. 정치공방이 가장 격렬하게 이뤄지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의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되고 쌍방 간에 타협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 정치경제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최근 코로나19 백신 구매에 있어서도 정당 간 공방이 일어났다. 쟁점은 대만이 상하이 소재 중국 푸싱(復星) 의약 그룹이 대리하는 독일 BNT 백신을 구매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집권당이 ‘반중’의 기치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이 대만과 상하이 푸싱 의약그룹의 백신 협상을 돕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대만 측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는데, 야당이 “인명은 하늘이 관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신속한 백신 수입을 요구하면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보인 중국의 속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차치하고, 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그리고 정당 간, 대중들 사이에서는 찬반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다. 이처럼 대만 사회는 양안관계 의제에 대해 컨센서스를 이루기 어렵고, 중국의 압박에 직면할 경우, 이러한 논쟁과 내부 갈등은 올림픽 무역 조정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대만이 단결해도 중국에 대항하기 어려운데, 분열된 대만은 중국에 더더욱 대항하기 어려울 것이다.

4) 양안 인민 간의 적대의식

최근 몇 년간, 양안 간에는 정부 간의 대립뿐만 아니라 인민들 간의 적대의식이 증가일로에 있다. 특히, 최근 2년여 동안 미중 무역전, 홍콩에서의 송환법 반대 시위, 대만 총통선거,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하면서, 양안 인민들의 입장은 심각하게 갈라져 있다. 특히 청년층에서 태생적으로 독립을 지지하는 대만의 “천연독(天然獨)”과 민족의 통일을 열망하는 중국의 “자연통(自然統)” 사이의 충돌, 반중국과 혐대만 사이의 대립은 거의 매일 양안의 각종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실 대만은 최근 중국 내 민족주의의 고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미중관계나 내부의 경제사회적 위기를 외부로 돌리기 위한 감정의 분출구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또한 “중국공산당”과 “중국 민중”을 구분하여 중국 대중들의 민심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인민들로 하여금 중화세계에서 민주적 제도를 실행할 수 있고 민주주의가 그들이 선택할만한 삶의 방식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또한, 이것이 대만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4. 결론

미중 간의 경쟁은 전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속의 본질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중 양측의 전략과 전술 속에서 협력, 경쟁, 대립의 세 요소가 갖는 비율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전략경쟁은 장기적이다. 만약 우리가 전략적으로 불가피하게 미국에 경도된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면, 전술적인 면에서는 반드시 좀 더 세밀하고 유연성 있게 움직여야 하고, 위험 회피의 공간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민진당 집권 이후 지난 4년 동안 형성된 교착상태와 팬데믹의 촉매 작용으로 현재의 양안 관계는 이미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위기관리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다. 현재 중국공산당의 정치 일정을 보면, “중국공산당 100주년의 기념”, “동계 올림픽”, “20차 당대회” 등의 원활한 개최가 관건이다. 이 기간에는 “자신의 일에 역량을 모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대만에 대해 무모하게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22년 가을 열리는 20차 당대회 이후의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의 대내외 정책 결정에서 시진핑의 의지는 당연히 가장 중요하다. 과거 몇 년 동안 국제 사회에서는 시진핑이 실권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주로 미중 무역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국내의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 그리고 과도한 반부패로 인한 정적들의 반격 등이 거론되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일들이 시진핑의 권위에는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권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공고해졌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팬데믹 발생 초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인도의 상황이 악화하면서, 중국공산당은 내부 선전 메커니즘을 발동하여 시진핑의 리더십 역할을 강화하고 제도적 우월성을 선전하고 있다. 미중 대립이 격렬해질수록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연임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시진핑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서 누구도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대만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위험 회피와 올림픽 무역 조정관 지연 전술이 될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기다리는 것이다. ■

■ 저자: 왕신셴(王信賢))_대만 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소장 겸 특별초빙교수. 2002년 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UC Berkeley, 일본 도쿄대, 와세다대의 방문학자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비교정치, 국제관계, 중국연구와 양안관계이다. 최근 연구업적으로는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How Small and Medium Countries Respond to the Competing Great Powers in Asia-Pacific Region,” “Building a Hyper-Stability Structure: The Mechanisms of Social Stability Maintenance in Xi’s China,” “Hobbling Big Brother: Top-Level Design and Local Discretion in China’s Social Credit System” 등이 있으며, 약 60여 편의 학술논문을 국내외 주요 학술지에 발표했다.

올림픽 무역 조정관

국세청에서는 해외진출 우리기업에 대한 세정지원을 위해 해외 세정뉴스를 매달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의 8월 나라별 세정 동향을 살펴보겠습니다.

○ 사기성 세금보고를 가려낼 새로운 디지털 시스템 도입 예정 (미주 한국일보)
내년부터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 납세자가 벌어들이고 사용했다고 보고한 금액들을 대상으로 일정 수준의 오차 범위 내에서 사기성 보고 여부 검증 할 계획이며, 시스템 내에 50여 가지의 사기성 보고 유형을 정의하여 입력할 예정입니다.
* ’13년(자동 적발 시스템 도입) 사기성 보고 색출 건수 1,556건 → ’15년 51건, ’16년 과거의 수동 방식으로 회기하여 14만 5,000건 색출


○ 미국의 세제 개혁 최근 동향 (워싱턴 포스트)
미 행정부와 공화당 주도로 세제 개혁이 검토되고 있으며, 공화당은 민주당을 배제한 채 단순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 가능한 조정입법 * 을 통해 세제 개혁안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양당간 합의하에 이루어진 1986년 세제개혁안과 달리, 조정입법을 통해 처리될 경우 의회 토론시간이 최대 20시간으로 제한


○ 177개 세금보고 대행업체의 고객정보 해킹 (미주 한국일보)
지난 1월~5월간 회계법인 등 177개의 세금 보고 대행업체가 고객 정보를 도난당했다며 신고했습니다. 해커들은 링크나 첨부 파일을 포함한 이메일, 유저 네임이나 비밀번호를 노출하도록 유도하는 방법 등 사용하였고, 이를 통해 대행업체 관계자의 ID 등을 파악하여 납세자의 정보 획득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 Security Summit, 세무전문가 대상 교육 캠페인 개시 (미국 국세청)
IRS는 신분도용 세금환급 사기 등 온라인 세금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민관협업단체인 ‘Security Summit’를 결성하여 활동 중이며, 세무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Protect Your Client, Protect Yourself’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메일 해킹 방지하기 위한 안내 및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화상 채팅을 통한 세금 조정 신청 실시 (미주 중앙일보)
IRS는 영상회의 기술을 구축, PC나 휴대기기를 통해 세금 조정관과 화상으로 상담 또는 세금조정 신청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8월 1일부터 시범적으로 시행 한다고 밝혔으며, 이를 통해 도시 외곽 지역의 회계사 등과 납세자들이 큰 혜택 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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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위원 - 제340회 제2차 외교통일위원회
죄송합니다. 국회가 추천하는 몫을 대통령이 소속되었던 정당의 교섭단체와 그 외 교섭단체가 2분의 1씩 동수로 한다고 그러는데 ‘그 외 교섭단체’가 하나일 수도 있고 둘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제3당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면 2분의 1씩 동수로 양쪽이 추천한다는 것은 여당 쪽에서 절반 갖고 가고 나머지 2당, 3당이 합해서 2분의 1을 갖고 간다는 그 얘기인가요? - 발언 회의록으로 이동

김성곤 의원 - 제342회 제1차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존경하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 여러분!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의원입니다. 지금부터 본 의원이 대표발의한 여수세계박람회 기념 및 사후활용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제안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특별법은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개최 성과를 계승․기념하고 박람회 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해양관광 활성화, 해양과학기술의 진흥, 해양수산산업의 발전과 해양자원, 연안 및 해양환경의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개발․관리․보전을 촉진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재단 임원의 임기가 짧아서 안정적인 사업 추진에 한계가 올림픽 무역 조정관 있고 재단 구성 및 사업계획 수립에 관할 광역자치단체장이 참여하고 있지 않아서 지역 사업과의 연계가 어려운 점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또한 설치 목적에 비해서 과도하게 비대한 여수세계박람회사후활용지원위원회가 그동안 실효성 있게 운영되어 오지 못한 문제도 이번 개정안을 통하여 개선․정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요 내용은 첫째 2012 여수세계박람회재단 임원의 임기를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하고 이사 및 감사의 임명권자를 해양수산부장관에서 재단 이사장으로 변경하며 재단 이사의 추천권자에 전라남도지사를 추가하고, 둘째, 외국인투자 촉진법에 따른 외국인투자기업, 비영리법인을 박람회 시설의 사후활용에 관한 사업의 시행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셋째, 관광진흥법 시행령의 개정으로 외국인에 대한 휴양 콘도미니엄업 시설 등의 분양 기준이완화됨에 따라 불필요해진 특례 규정을 삭제하고, 넷째 여수세계박람회사후활용지원위원회가 박람회 시설의 사후활용 사업과 실질적인 관련성이 적은 다수의 중앙행정기관의 장 등으로 구성되어 사후활용 사업추진을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이를 폐지하여 사업의 효율성을 도모하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위원 여러분! 본 개정안은 지난 2012, 전국민적인 성원 속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된 여수세계박람회의 물적․정신적 유산을 계승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박람회장의 사후활용에 필요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담고자 했습니다. 부디 본 개정안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를 해 주시고 원안대로 통과시킬 수 있도록 뜻을 같이 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제안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발언 회의록으로 이동

한국문학번역원장 김성곤 - 제343회 제5차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그 당시에는 제가 부임하기 전인데요, 아마 그 규정이 번역지원을 하지 않으면 출판지원을 하지 않는다라고 돼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대산문화재단으로 그것을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데보라 스미스는 저희 번역원의 자문위원이고요, 데보라 스미스가 차린 출판사하고도 MOU를 맺고 매년 한국문학책을 내고 있고 저희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발언 회의록으로 이동

한국문학번역원장 김성곤 - 제343회 제5차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일단은 저희가 내년도에는 연구용역을 좀 주고 워크숍을 하고 해서 기초작업을 다 해 놓고요. 144억을 한꺼번에 신청하기는 어려우니까 차후에 점진적으로 진행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발언 회의록으로 이동

한국문학번역원장 김성곤 - 제343회 제5차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기존 통번역대학원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하는 거고요. 저희는 한국말로 된 것을 외국어로 합니다. - 발언 회의록으로 이동

한미 FTA 협상의 미국 측 총책임자는 무역대표부를 맡고 있는 롭 포트먼 대사다. 그는 1955년생으로 미국 아이비리그 소속인 다트머스대학교를 나오고 미시간대학 로스쿨을 1984년에 졸업했다. 그는 변호사 자격을 따고 워싱턴과 고향인 신시내티의 로펌, 백악관에서 변호사로 모두 8년을 근무했다. 신시내티의 로펌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던 1993년에 그는 보궐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이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제103대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2005년에 무역대표로 임명되면서 제109대 하원의원 직을 사임할 때까지 연속 7대에 걸쳐 하원의원에 당선됐다(미국 하원의원의 임기는 2년이다).

아들 부시 행정부의 첫 4년 동안에 그는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과 부시 대통령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이때 포트먼이 다리 역할을 하면서 보여준 협상능력이 나중에 부시 대통령이 그를 무역대표부의 책임자로 임명하는 데 바탕이 된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에 그를 무역대표에 지명하면서 "나의 좋은 친구이며 탁월한 협상가"라고 소개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홈페이지에서 그를 친화력이 대단한 사람으로 자신이 발의한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반대당 소속 의원들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김한길 의원보다 더 설득력이 좋은 모양이다.

워싱턴에서 많은 사람을 초청해 놓고 협상 상대자인 김현종 본부장까지 불러서 들러리로 세우고는 협상개시 선언이라는 행사를 성대하게 벌이는 것을 보면 그가 반대 정당 의원들까지 내 편으로 만드는 설득력과 수완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맞짱'을 떠야 하는 한국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어떤 사람인가?

***김현종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한국에서 이번 협상의 총책임을 지고 있는 분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다. 1959년생인 이 분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컬럼비아대학교라고 하는, 뉴욕에 있는 아이비리그 소속의 명문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같은 대학교의 로스쿨을 졸업하고는 1985년에 미국 뉴욕주의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1985년부터 미국의 로펌에서 4년 간 근무한 뒤 1989년에 김신&유라고 하는 한국의 법률사무소로 옮겼다.

외교통상부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약 6년 뒤인 1995년이었다. 그가 처음에 맡은 역할은 통상자문 변호사였다. 이어 1998년에 통상전문관이 됐다가 2003년 3월에 통상교섭조정관(1급), 그리고 2004년 3월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했다. 한국에서의 공식 직함은 통상교섭본부장인데 영어로는 '통상장관(Minister of Trade)'으로 불린다. 2월 2일의 협상개시 선언에서 미국 측 대표인 포트먼이 그렇게 불렀고, 바로 이어서 연설을 한 본인도 그 호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장관급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본인이 국정리포트에 기고한 글에도 '양국의 통상장관 회의'라고 언급하고 있다.

협상가로서의 그의 경험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그 분의 경력을 가지고 유추해보는 수밖에 없다. 미국 로펌에서 4년 동안 일을 한 기간에는 중요한 협상을 맡아서 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 로펌에서 4년차 변호사라고 해봐야 주니어 레벨이다, 아주 작은 규모의 로펌이 아니라면 그 기간에는 중요한 협상을 직접 맡아서 하기는커녕 그런 자리에 참석할 기회도 거의 없다. 혹시 한국인 기업체가 그를 통해 그 로펌에 업무를 의뢰했으면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을 의뢰인에게 보고할 필요에서 배석을 했을 가능성은 없지 않지만, 한국 기업체들은 미국에서도 대형 로펌들만 이용한다. 로펌에서 의뢰인을 대신해 진행하는 중요한 협상은 파트너 급에서 감당한다.

김현종 미국 변호사가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지면에 실린 그의 기고 글이나 워싱턴에서 협상개시 선언을 할 때 그가 한 발언으로 미루어보면 그 나이에 한국에서 문과 계열의 대학을 다녔으면 전공과 상관없이 누구나 익혔을 정도의 경제학 지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미 FTA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한국과 미국을 잇는 경제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일이고, 그 결과로 한국의 소비자들이 이익을 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경제적으로 차이가 있는 두 개의 도시 사이에 고속도로가 건설되면 도로의 반대편 도시에 우세한 업체가 있는 산업은 이쪽의 열세도시에서는 사라진다. 예전에 웬만한 지방도시에 한두 개씩 있던 아이스케이크 공장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는 또 한미 FTA를 추진하는 목적이 관세를 낮추어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싼 가격에 미국의 소비재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관세를 낮춰서 미국산 소비재 가격을 낮추는 것이 목적이라면 한미 FTA를 체결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반대해서 한국이 미국산 소비재 관세를 낮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관세는 한국의 소비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이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산 소비재가 싼 값에 들어오면 동종의 한국 업체에 근무하던 한국 소비자들은 실직으로 인해 그 소비재를 구매할 능력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한국의 관세를 내리는 것은 한국의 국세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들은 쏙 빼고 협정 체결로 수입품에 대한 한국 관세가 낮아지면 가격이 내려가서 한국 소비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는 하는 말을 미국 대표가 했다면 또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은 협상의 한국 측 총책임자다. 본인이 그렇게 믿고 말을 한 건지, 믿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말한 건지는 모르지만, 두 경우 다 걱정이다.

두 사람의 경력을 비교해 보고난 뒤의 느낌은 협상 선수로서 포트먼 무역대표와 김현종 본부장의 실력차이가 천하장사와 고등학생 씨름선수의 실력차이와 같은 정도 혹은 그 이상이겠다 하는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의 워싱턴 발언**

협상개시를 선언하던 날 김현종 본부장이 미국에서 미국의 의원들과 비즈니스 대표들, 그리고 각국 기자들을 상대로 한국협상단을 대표해 발언한 요지는 이렇다.

"오늘 저녁 시작을 알리는 한미 FTA는 한미 두 나라가 1953년 군사동맹을 체결한 이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1950년대에 우리의 국민소득은 일인당 50달러 정도였다. 이제는 국민소득이 1만4600달러에 달하고, 올해 말에는 2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의 70%를 교역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25%보다 훨씬 높다. 교역은 우리나라 경제에 아주 중요하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소비자들이 혜택을 본다. 우리 쪽 연구에 의하면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이 135억 달러 늘어난다고 한다. 이것은 1인당 290달러이고, 4인 가족으로는 연간 1200달러의 소득증가를 의미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파트너다. 모든 자유무역협정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피해를 보는 분야도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간단하게 말하면 농업이 피해를 보는 분야다. 그러나 우리는 향후 10년에 걸쳐 우리나라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1190억 달러를 사용할 계획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적응을 하고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밖에도 더 많은 지원 계획이 있다.

내가 처음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자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우리 부서의 직원들은 미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좋은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미친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나는 덧붙이고 싶다. 우리는 이 협상을 아주 빨리 끝내야 한다. 앞으로 장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포트먼 대사는 호흡이 잘 맞으니 우리는 어떤 장애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일은 우리가 끝까지 마무리지을 생각이다."

김현종 본부장은 자신의 연설이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고 위와 같은 연설을 했을까?

김현종 본부장의 워싱턴 연설은 그가 포트먼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포트먼은 협상을 할 때 그날 참석한 사람들의 의견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두게 돼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김현종 본부장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50년 간 미국은 한국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는 미국 때문에 농업이 피폐해지고 식량자급 기반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주한미군 주둔 부담금과 미군기지 이전비용을 한국 국민이 모두 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미국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서 미국은 한국의 농업기반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고 금융, 통신, 서비스, 제약업 등에서 국내 산업을 엄청나게 위협하는 조건을 요구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국의 국내 정책결정에 미국의 기업체가 간섭할 도구를 제공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오로지 노무현 대통령이 의지로 밀어붙인 덕분이다. 우리는 국내의 반대를 올림픽 무역 조정관 올림픽 무역 조정관 무릅쓰고 협상에 성의를 보이기 위해 이미 스크린쿼터도 축소했고,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도 재개했고, 의약품 가격 재평가도 보류했다. 칸 영화제에서 상을 탄 한국의 유명한 배우들이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들어 반대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지도력이 많이 손상됐다. 미국이 앞으로 본협상에서 한국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강요한다면 협상이 성사되기 어렵다. 아무리 강력한 의지를 가진 대통령이라도 국민이 반대하는 협정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한국은 이제 군사독재 국가가 아니다. 여러분의 대통령이 국민여론에 신경 쓰듯이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국민여론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강요해서 이 협상이 깨진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손해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고 미국의 7대 교역상대국일 뿐 아니라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구소련 지역에까지 미국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도 동시에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무리한 조건을 요구해서 이 협정이 결렬되면 한국시장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다른 나라 기업들에게 선수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포트먼 대사가 재량권을 가지고 협정에 임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시기를 바란다."

***협상결과가 선수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

변호사 출신인 포트먼 대사의 지금 직업은 정치인이다. 7선의 노련한 하원의원이자 대통령과 다수당 의원단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제 51세이니 앞으로도 정치인으로서 얼마든지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7선을 안겨준 안정된 선거구를 내던지고 맡은 것이 무역대표부의 책임자 자리다. 무역대표부의 책임자 자리가 정치적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판단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워싱턴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미 FTA는 자신이 무역대표부의 책임자가 된 뒤 첫 작품이며, 자신의 첫 상대역으로 대한민국 이상 가는 나라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가 자신의 정치경력에 커다란 자산을 안겨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는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체결해 무역대표의 업무를 성공으로 장식하고 다음 단계의 정치적 진출을 모색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 FTA가 미국의 노동자, 농민, 서비스 제공자, 기업가들이 만족할 만한 내용으로 체결되느냐 여부가 그에게 개인적으로도 매주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협상이 미국의 정치가 기업가, 농업자본가,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은 유권자의 반응을 살피며 살아온 정치인이 아니다. 자신이 입안하거나 시행한 정책의 결과에 따라 진급 여부가 결정되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그 자리까지 올라간 분도 아니다. 정부에 특채되기 전까지는 변호사로 살아 온 분이다. 자기가 대행한 일의 결과가 좋으면 좋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도 수임료를 받는 것이 변호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체결로 우리나라 경제가 악화되어도 그에게 개인적인 피해가 돌아갈 일은 없다. 협정의 결과로 경제에 악영향이 미치면 비판을 받을 것을 대통령이고, 자신은 변호사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어떤 내용으로든 협정이 신속하게 체결되기만 하면 본인은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속한 체결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보다 한국 측이 양보하도록 설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김종훈 한국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

이왕에 선수들을 살펴보는 김에 다른 주전 선수들의 경력도 잠깐 살펴보자.

국정리포트에 보면 3월 6일 서울 예비회담에서 마주앉은 양측 대표단의 사진이 있다. 그 중에서 한가운데 앉은 사람들이 양쪽 수석대표다. 미국 측은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부 부대표이고, 한국 측은 김종훈 APEC 회의 의장이다. 두 사람의 경력을 한번 알아보자.

먼저 한국의 김종훈 수석대표는 정통 외무관료 출신이다. 1974년에 외무부에 입부한 이래 재외공관의 서기관, 참사관, 공사, 총영사 직을 거쳤고,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도 근무했으며, 외무부의 특전(특별의전의 줄임말인 듯함)담당관, 의전담당관, 그리고 의전심의관 등의 직책을 거쳤다. 2004년부터 APEC 의장직을 맡고 계신다. 그러나 이 분이 통상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경력은 1997년부터 1년 간, 그리고 2000년부터 2년 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지역통상국장으로 근무한 것으로 모두 합쳐서 3년 간이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웬디 커틀러 올림픽 무역 조정관 부대표는 결혼해서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는 아주머니다. 이 아주머니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학사를 하고 조지타운대학에서 석사를 했다. 처음 사회생활을 한 곳은 미국 상무부. 거기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근무하다가 1998년에 무역대표부로 자리를 옮겼다. 무역대표부에서 근무한 기간에는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와 APEC 담당관으로만 일했다. 통상교섭 업무만 20년 넘게 한 여성이다. 나이는 40대 중반이나 후반쯤 되겠다.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와 김종훈 수석대표가 협상을 해서 김종훈 대표가 웬디를 꺾고 양보를 받아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웬디는 20년 이상을 통상교섭 업무만 해 온 사람이고, 김종훈 수석대표는 외교관으로 30년 가까이 지낸 분이다. 매너가 깍듯하고 상대의 기분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을 가리켜 "외교관 같다"고들 한다. 외교관 중에서도 특히 의전분야 일을 맡은 분들은 이런 묘사가 더욱 적절하도록 행동한다. 의전담당 외교관이 주재국이나 상대국 외교관과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일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일은 드물다.

김종훈 수석대표의 30년 넘는 외교관 경력 중 통상관련 분야에서 근무한 기간은 모두 3년이다. 그 3년 동안에 통상협상에 얼마나 직접 참여했는지를 모르지만 웬디 커틀러의 20년 경력을 이길 만한 경험을 쌓았을까? 김 대표는 1952년생이니 쉰을 넘긴 중년신사다. 이런 분은 대개 자기 물건을 살 때도 깎거나 따지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더구나 상대가 중년의 아주머니인데.

사진을 보면 웬디와 김 수석대표가 통역 없이 직접 대화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웬디가 한국말을 할 것 같지는 않고 김 수석대표께서 영어를 하실 텐데, 김 대표가 한 마디 하면 웬디가 열 마디 스무 마디를 할 것이다.

김현종 장관이 이끄는 한국 협상대표단이 롭 포트먼과 웬디 커틀러가 포진하고 있는 미국 협상대표단을 상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협정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부산상고 야구팀이 뉴욕 양키즈와 시합해서 승리할 가능성만큼도 될 것 같지 않다. 이 협상팀을 데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과 '맞짱'을 뜨겠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맞짱을 떴다가 깨지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나? 피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이고, 피해 정도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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